조광식_스포츠평론가  
 
지난 해 여중생을 치어 목숨을 잃게 했던 미군 장갑차 운전병에 대해 미군의 군법 재판이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를들어 무죄 평결을 내렸을 때 온 나라가 들끓었다.
모든 언론 매체들도 평결이 잘못되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대서특필(大書特筆)했다. 이러한 가운데 어느 신문에 색다른 기사가 실렸다. 미국에 이민 간 우리나라의 한 주부가 운전 도중 교통사고를 내 어린 아이의 목숨을 잃게 했지만 고의성이 없는 '사고'이기 때문에 형사 책임은 없고, 대신 민사상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는 내용이었다.
이 신문 기사는 계속해 여중생의 목숨을 앗아간 미군 장갑차 운전병에게 내려진 무죄 평결을 탓하는 것은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에 갓 이민 간 우리나라의 한 할머니가 동네를 산책하다 풀밭에서 놀고 있던 어린 아이가 귀여워 이민 오기 전에 해왔듯이 무심코 어린 아이의 '고추'를 만졌다가 큰 고초를 겪었다거나 타일랜드에서 우리나라 관광객이 귀엽다며 어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다 역시 봉변을 당했다거나 하는 일 모두가 '문화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하나의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지난 4월 24일 미국의 AP 통신과 스포츠 전문 채널인 ESPN은 미국 프로야구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유제국 선수가 "동물 학대 죄로 기소되어 처벌을 받을 처지"라고 보도했다. 현재 미국의 프로 야구 시카고 컵스의 마이너리그 하이 싱글 A팀인 데이토나 컵스에서 투수 생활을 하고 있는 유제국 선수가 경기에 앞서 연습을 하던 중 왼쪽 조명 탑 위에 앉아있던 물수리에 볼을 던져 상처를 입혔다는 것이다.
물수리라는 새를 미국을 상징하는 흰머리 독수리의 일종인데다 멸종 위기에 있는 보호 대상 조류다. 따라서 상처를 입힐 경우 2급 경범죄에 해당되어 60일 구류에 500달러의 벌금이 함께 내려지게 된다. 유제국 선수가 물수리를 볼로 때려 상처를 입히는 과정을 지켜본 시민들은 즉각 사법 당국에 고발하는 한편 구단에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빗발치는 팬들의 항의에 구단은 일단 유제국을 한 단계 낮은 싱글 A 랜싱 리그넛츠로 강등시켰다.
유제국 선수가 뜻밖에 맞이한 황당한 이 사건이야말로 분명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스포츠 선수의 해외 진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프로 야구와 골프, 다시 여자 프로 농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우리나라의 유망주들이 미국의 스포츠 무대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에게 문화적 차이라는 험로(險路)는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 동안 힘든 나날을 보냈다. 다행이 문화적 차이를 슬기롭고 빠르게 극복 해낸 선수들은 나름대로 성공의 길을 향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도중에 지믕ㄹ 꾸려 돌아오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해외, 특히 미국에서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는 우리의 운동 선수들을 실력도 실력이지만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전 준비도 필수 요건이라 여거진다.
특히 이번 유제국 선수의 행동은 문화적 차이로 인한 사건이라고 하기보다는 고등학교에서 민주 시민의 자질을 몸에 익혔던 상식인이라면 결코 해서는 안될 짓을 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운동 기능만 중시하는 우리 학원 스포츠가 낳은 비극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하는 사건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