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민_한겨레신문 여행담당 기자   꽃도 아니고 녹음도 아닌, 봄의 또 다른 감동적인 자연색깔은 들판의 푸르름이다. 아직 모내기가 일러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는 논과 논둑엔 요즘 자운영이 만발해 있다. 파란 자운영 이파리와 분홍색 자운영꽃은 올 농사의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꽃다발이다. 밭에는 종대를 내놓기 직전인 마늘이 몸매에 굵기를 더해가고 있다. 완두콩이 밭두렁 사이에서 하얀색과 진보라 양탄자 색 닮은 꽃을 피워 고슬고슬한 `완두콩밥을 생각나게 한다. 이런 들녘의 풍물들을 만나면서 봄길 가기는 일년 중 이때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멋지고 즐거운 소풍이다. 보리내음 풀내음 가득한 5월의 청보리밭 5월 들녘의 색깔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보리밭-청보리밭이다. 보리밭은 보리가 익으면 누렇게 되는데, 그 때는 ‘보리밭’, 요즘처럼 녹색이 한창 싱그러운 때를 특별히 ‘청보리밭’이라 부르기도 한다. 해마다 이때 들녘에 찾아드는 청보리밭의 순수하고 건강한 녹색은 아마 자연색 가운데 가장 순도가 높고 아름다운 색일 것이다. 요즘 보리밭은 보리이삭이 막 피어나고 있다. 이 달 중순까지는 이삭이 더 자라면서 보리의 키가 한껏 커진다. 그때까지는 청순한 녹색이 기승을 부린다. 그 보리밭에 들어가면 녹색물감이 옷과 온 몸에, 그리고 살을 뚫고 몸 속으로 스며들 것 같다.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고 아름다운 보리밭이 있다. 고 진의종 전 국무총리의 아들 진영호(53)씨 부부가 운영하는 학원농장이 그것이다. 무려 11만 평에 이르는 이 ‘학원농장’ 보리밭은 보리밭으로 지평선이 보인다고 할 만큼 아득하다. 이 보리밭 사이에 들면 마치 ‘보리숲 밀림’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싱싱하고 파란 보릿대의 생기와 풋풋한 보리내음 풀내음, 그리고 땅에서 올라오는 걸쭉한 흙내음에 취해 정신이 몽롱할 지경에 빠진다. 보리밭 보릿대 사이사이엔 저절로 난 배추꽃이 피어 틈틈이 노란 색깔을 비집어 넣어줌으로써 보리밭의 파란 색깔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다. 그 속에서 멧비둘기들이 구~, 구~, 구~ 밀애를 나누고 꿩들이 보금자리를 펼 장만을 하고 있다. 보리밭 하늘을 수놓는 종달새의 노래 특히 보리밭과 종달새는 뗄 수 없는 관계다. 학원농장 보리밭 하늘은 아침 저녁에 종달새 노래로 뒤덮인다. 보리밭 고랑에 집을 짓거나 알을 깐 종달새들은 보리밭 위 50m 안팎의 높이에 떠서 멈춘 채 날개를 하늘거리며 5～10분씩 소프라노 목소리로 꼭 한 곡조씩 뽑는다. 일종의 ‘영역표시 행동’이겠지만 이 종달새 노래는 봄철 ‘보리밭 고향’을 둔 사람들에겐 너무나 그리운 추억이다. 종달새들은 6월초쯤 새끼를 치고 목청을 더욱 돋우는데 이때 보리밭 골은 시골 아이들과 종달새들의 치열한 ‘꾀겨루기 마당’이 된다. 종달새가 뜨면 아이들은 바로 그 아래 밭고랑에서 보리피리를 만들어 어미새 소리 흉내를 내면서 새집을 찾아 나선다. 새끼들이 피리소리를 어미소리로 착각해 밥 달라는 아우성을 쳤다가는 큰 일 난다. 어미새는 들킬세라 일부러 밭고랑을 비끼어 집에 내린다. 혹시 종달새 새끼들을 집에 잡아들인 아이들은 열심히 어린 메뚜기나 파리를 잡아 먹이지만 되돌려 보내라는 어른들의 성화에 굴복하기 일쑤다. 요강 뒤집어질라 복분자술에 풍천장어 먹세그려 “고창에 가서 ‘풍천장어와 복분자술’을 맛보지 않으면 헛 다녀왔다”는 말이 있다. 풍천장어는 바닷가에 다다른 강 어귀(풍천)에서 난 장어를 말하는 것으로 고창의 특산물이다. 강의 상.중류에서 사는 것보다 힘이 세고 맛이 좋아 ‘스태미너 음식’으로 불린다. 요즘은 대부분 양식하는데, 중간 크기 것을 풍천주변에 방류해 자연산화하기도 한다. 풍천장어 요리는 장어 내장과 뼈를 골라내고 갖은 양념을 하여 숯불에 구워서 상추에 싸먹는다. 얼마나 육질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나느냐는 주방장의 솜씨에 달려 있다. 선운사 들머리 전문식당 ‘장어나라’(063-564-8020)에서 자연산에 가까운 풍천장어 요리를 내놓는다. 풍천장어 요리와 궁합이 잘 맞는 것이 복분자술이다. 복분자술은 고창에서만 나는 산딸기술이다. 복분자술은 감칠맛이 나고 뒤끝이 개운한 게 특징이다. 고급 포도주에 못지않은 색과 향을 지니고 있고, 숙취 후유증이 없다. 풍천장어 요리를 안주로 하면 다른 음식의 소화도 잘 된다고 한다. 현재 고창 선운사 가는 길목에 있는 ‘고창 명산품 영농조합법인 복분자주’(대표 노광록, 063-561-2032)에서 소비자 기호에 맞춰 7종류의 복분자술을 생산해 전화주문 판매도 한다. 찾아가시는 길 서울에서 호남고속도로 정읍나들목으로 들어가 22번 국도를 타고 고창읍 쪽으로 가다가 흥덕에서 23번 국도를 따라 고창읍에 들어간다. 796번 지방도를 따라 무장을 거쳐 공음 쪽으로 가다 왼쪽으로 군도 4호선인 선동 방면 길을 따라가면 학원농장이 나온다. 고창에서 무장행 직행버스는 30분 간격(20분 소요)으로 있다. 무장에서 공음방면 군내버스를 이용해 선산에서 내린다.(농원까지 10분 걸린다) 학원농장에는 잔디축구장과 회의실, 산책로, 화훼단지, 숙식시설 등이 갖춰져 있어서 견학을 겸한 단체연수회 장소로 좋다. 주말농장 예약(063)564-9897. 잠자리는 고창읍 동방호텔이나 선운사 관광단지 동백관광호텔, 고창유스호스텔 등이 좋다. 선운사 관광단지 안에 각종 식당이 많다. 고창 여정에서 고창읍성, 고인돌공원, 김성수 생가, 선운리 서정주 시인 생가, 신림면 효감천 등이 들러볼 만하다. 선운리(질마재 마을)에는 최근 단장된 서정주 문학관이 있다. 효감천은 ‘시묘하는 아들의 효성에 하늘이 감복하여 내린 샘물’로 전해온다. 고인돌 공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신청해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