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_이태환   아현동 추계학원 이사장실은 교문 초입 2층에 위치하고 있다. 보통의 경우 대학 본관 내지 학원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이사장실이 자리잡게 마련인데, 추계학원 이사장의 직무실은 학원내 “문간방”에 자리를 잡고 있다. 당사자인 임형빈 씨의 표현에 의하면 ‘쫓겨났다’는 것이다. 15,000여 평의 학원 대지에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한 곳에 있으니 어쩔 수없이 “밀리고 밀려서” 안방을 내주고 지금은 ‘문간방’ 신세를 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안방을 기꺼이 내주고 기쁜 마음으로 ‘문간방’에 머물고 있는 임형빈 씨. 그는 소탈하다. 그는 넥타이를 거의 매지 않는다. 일년에 어쩔 수 없이 격식을 갖춰야하는 자리 말고는 여간해서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이유는 “불편하고 격식을 좋아하지 않는 천성 때문이다.” 그와 만나 이야기 하는 동안 내내 떠나지 않는 생각은 ‘참 편안하다’라는 것이었다. 소탈하다는 것과 편안하다는 것의 동격. 그 속에는 사람을 친근하게 만드는 임형빈 씨의 참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릴 때의 임형빈 씨는 수줍움이 많았다. 배구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수줍움이 많은 성격 탓에 배구가 나의 성격에 맞을 것 같아” 경기중학 3학년 때 배구부에 들어가 운동을 시작했다. 총리를 지낸 이홍구 씨도 같은 학교에서 배구를 한 후배이다. 당시 대표적인 엘리트 집단이었던 경기중학에서의 배구 선수 시절엔 힘들었지만, 참 열심히 했다. 물론 운동때문에 공부를 게을리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지금 키가 그 때 다 컸습니다. 그래서 포지션도 센터만 보았습니다. 전위 센터와 중위, 후위 센터를 왔다 갔다 하면서 플레이를 했지요.” 실내체육관은 꿈도 못 꿀 시절이었기에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겨울에 운동할 때는 ‘하얀 공이 붉은 공’ 으로 되기도 했던 시절. 공에 바람이 빠지면 자전거포까지 가서 공기를 주입했고, 가죽이 닳고 헤지면 구두 수선소에서 꿰매기도 했으며, 왕모래가 깔린 운동장에서 공을 받아내려면 무릎이 까지는 것은 다반사였다. 겨울철 언 손으로 스파이크를 받아낼 때는 손이 ‘쩍쩍’ 갈라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면서 배구를 했다. 의학을 포기하고 선택한 배구인의 길 군에 가서도 그는 배구의 질긴 인연은 계속되었다. 1951년 해군에 의무 하사관으로 입대하여 부산 광복동에 있을 때였다. 느닷없이 CIC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당시 CIC 부대장이었던 김창용 씨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게 한 것이다. 배구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배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같이 배구를 하자는 제안을 했다. 당시 의학을 공부하던 그는 부모님과 상의한 끝에 그의 뜻대로 배구를 선택하였고, 그 길로 대구로 올라가 CIC배구부에서 계속 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은 그에게 있어 인생의 갈림길이 된 사건이었다. 의학을 공부하던 의학도에서 배구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그 때 배구를 선택하였고 그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아시아배구연맹 부회장직 말고는 국제 배구 연맹 일은 작년에 손을 놓았습니다. 작년에는 참 많이 바빴어요. 올해도 작년만큼 바쁜 해인데, 중국의 사스(SARS) 때문에 많은 국제회의가 취소되면서 조금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국제 배구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은 단연 임형빈 씨이다. 국제 배구계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구 외교관’으로 임형빈 씨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배구협회 회장을 지낸 이낙선 장관의 제안 때문이었다. 이낙선 장관은 배구협회를 맡으면서 임형빈 씨를 국제 배구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적임자로 세웠다. “내 성격상 외교관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외교관은 첫째 성격이 활발하고 사교성이 좋아야 하는데 난 그렇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외국 친구들을 만날 때 정성으로 대하고 국제 회의에 워낙 많이 참석하고, 국제 연맹 일도 하게되니 자연히 친구들이 많이 생기면서 국제 무대에서 지금까지 별 무리없이 우리 배구계가 나름대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작년 한해동안 비행기 탑승 횟수만 200여 차례. 잔여 마일리지만도 30만 마일리지가 넘는다. 일년에 절반은 국제 무대에서도 활동 하는 그이다. 소탈한 품성으로 자기를 자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그이기에 국제 무대에서 그의 진가를 알아주는 것이다. 또한 그는 국제 배구계에서 탁월한 외교력으로 한국의 배구를 현 위치까지 올려놓은 일등공신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노력으로 한국 배구는 도쿄올림픽 이후 지금까지 올림픽에 연속 출전하였으며, 최초 구기 종목 메달 획득이라는 쾌거 또한 그의 숨은 노력으로 이뤄진 결과이다. 욕심없이 살아온 교육자이며 체육인 요즘의 ‘문간방’ 생활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체육관을 돌아보는 일이다. 그가 시간만 나면 들르는 곳이 선수들이 운동하는 체육관이다. 특히, 초등학생 선수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솔솔 하다’. “요즘은 매일 체육관에 들러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나에게는 큰 행복입니다. 특히, 하루하루 몰라보게 실력이 자라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입니다.” 평생을 지켜온 「사무사(思無邪) 모자기(母自欺)」라는 말처럼 욕심없고 사심없는 소탈한 삶을 살아온 교육자이며, 체육인으로서 ‘스포츠 외교관’의 길을 걸어온 임형빈 추계학원 이사장. 그와의 만남 시간 내내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참 좋은 사람 냄새를.